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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6 | 하나님의 슬픔 | 카리스 교회 주일 예배

주보와 설교

by unclechang 2023. 12. 9.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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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카리스 교회 이창우 목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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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26일 설교 및 주보

설교 제목: 하나님의 슬픔

본문말씀:창세기 8 20절부터 9 9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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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_231126_하나님의슬픔.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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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폭력의 역사는 가인에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가인은 그의 아우 아벨을 죽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죄인을 보호하는 법을 만듭니다. ,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배나 받으리라.”(4:15)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가인의 가문은 폭력을더해만 갔습니다. 바로 라멕이었습니다. 그는 가벼운 상처로 말미암아 사람을 죽입니다. 그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  배이리로다.”(4:24)

 

가인은 태초의 창조와 다른 인간 문화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는 너무 악하고 폭력적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른 백성을 준비하셨습니다. 아담이 아내와 동침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이 이었습니다. 셋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다른 씨였으며, 그때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말합니다.(4:26)

하지만 셋의 가문도 타락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아내를 삼게  것입니다. 그들의 자식들은 네피림 되었고 그들은 용사였습니다. 그들은 악했습니다. 아마도 라멕의 폭력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다음과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6:5-7)

 

하나님께서는 다시  타락한 세상을 구원하고자  사람을 준비합니다. 그는 노아였습니다. 이제 노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진노하여 홍수를 일으킵니다.  시간에 홍수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문화와 하나님 나라의 문화가 어떻게 다른지는 조금이나마 구분할 필요는 있습니다.

 

도대체 세상 문화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가인의 후손인 라멕을 통해서 우리는 약간의 힌트를 얻을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 가인을 보호하는 법을 만든 반면, 오히려 라멕은 폭력을  조장하기 위해서 법을 만듭니다. 세상의 문화 속에는 어떤 폭력이 항상 숨어 있습니다. 이것을고발하고 있는 것이 바로 성서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세상의 문화의 특징은 다수가 1인을 향한 폭력 저지릅니다. 그래서항상 다수 편에 서게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를 사회에서 많이 찾아볼  있습니다. 집단 린치 사건이 발생하는 것도 이와 동일한 이치입니다. 집단 린치란 여러 사람들이  사람을 집중적으로,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행위를 말합니다. 한마디로, 왕따 역시 집단 린치 현상 중에 하나로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문화는 이런 집단 린치에 들어 있는 폭력을 고발합니다.

이런 집단 린치가 폭력에 연루된 사건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문화에 내재되어 있는 경우가 있지요. , 합법적이고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도 숨어 있는 폭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폭력이 우리 눈에는  보이게 성스럽게 포장됩니다. 문화인류학자인 르네 지라르는바로 이런 현상을 목격했고 이것이 문화 속에 어떻게 내재되는지 설명합니다.

그는 희생양 메커니즘이라는 말로 이런 현상을 설명합니다. 고대에 사회에 혼란이 발생하거나 전염병이 돌면,  희생양을 찾았다고합니다. 다수가 집단 전체를 위해 희생되어야  사람을 찾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가 죽고 나면, 마치 집단 전체를 구원한 구원자로 둔갑합니다. 그래서 그를 신성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바로 이것이 폭력과 성스러움이 만나는 지점이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노아는 그 당시 사람들에게 집단 린치를 당한 사람 아닐까요?

 

 

왜냐하면 그는  시대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아마, 다수가  1인을 향한 폭력을 가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는 당시 문화 속에서는 섞일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히브리어 ΟΏΠ(하마스) 폭력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창세기 6 11, 13절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땅에 폭력이 가득했던 것입니다. 히브리어 노아라는 말은 조용한 혹은 안식하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폭력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 노아라는 이름입니다. 노아는 엄청난 비극의 현장에서 살아 남은 사람이었습니다.

노아는 PTSD(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겪지 않았을까요?

 

왜냐하면 그는 비극의 생존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세상의 어떻게 멸망해 가는지  눈으로 똑바로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홍수가 없었다면, 노아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홍수가 없었다면, 노아가 희생양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노아를 지켜볼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문화 속에 들어 있는 다수의 1인을 향한 폭력 드러내고자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생존자인 노아는 ‘진노의 하나님’을 증언하기 위해 살아남은 것일까요?

 

 

 다시 말해, 하나님의 얼마나 무서운 분인지, 인류의 모든 사람들을 소멸하시는 분임을 증명하기 위해 살아남은 것일까요? 그렇다면, 그런 하나님은 얼마나 폭력적인 분이십니까? 우리는 그런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것인지요? 우리는  사건을 통해 이런 질문과 마주할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조금 다르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홍수 사건 이후에 노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홍수는 끝이 났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고 정결한 짐승을 잡아 번제로 하나님께 드립니다. 여호와께서  향기를 받으시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땅에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8:21-22)

 

사람들은 홍수 사건 이후에 변했나요, 변하지 않았나요?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변한 것은 누구인가요?

 

 

 

 구절은 궁극적으로는 사람이 변한  같지 않습니다. 조금  고민하면서 말씀을 보고 있노라면, 사람은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오직 하나님의 마음만 변한  같습니다. 이것이 오늘 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슬픔입니다. 인간은 홍수 사건을 경험했지만 그래도 악합니다. 인간은  변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도  고쳤습니다. 이것이 인간에게 은혜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 악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언약을 세우십니다. , 스스로 자신을 제한하십니다. 이것은 마치 인간 대신에 하나님께서 고난 당하실 것을 약속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리하여 창세기 9장은 1장과 다른 선포가 나옵니다. 창세기 1장에서는 폭력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9장의 선포에서는 폭력이 존재합니다. 바로 이것이 근본적인 차이점입니다. 

 

 

[9:2]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왜 세상의 모든 동물들이 인간을 무서워해야 하나요?

 

 

본문 말씀대로라면, 세상의 모든 동물들이 아직도 제거되지 않은 인간의 폭력성에 맡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용인하는 대신, 성경에 보면 금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동물의 생명이 되는  먹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9:5) 이렇듯, 하나님은 자신을 제한하신 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인간의 폭력성을 걱정하는 듯한 말씀을 하십니다. 

 

[9:5-6]

5 내가 반드시 너희의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6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말씀은 인간에 대한 공격은 마치 하나님에 대한 공격인 것처럼 들립니다. 6절에 보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는데,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도 똑같이 피를 흘리게  것이라는 말씀 때문이지요. 우리는  구절로 인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명령을 다시 재해석해야 합니다. ,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땅을 다스려야 하지만, 그것은 폭력으로 다스리라는 의미는 아닌 같습니다. 철저한 청지기 정신 하나님이 주신  땅을 아름답게 가꾸는 정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한 인간에게  번째 언약을 말씀하십니다. 

 

[9:11-13]

11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13 내가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노아는 하나님의 진노를 증거하기 위해 살아남은 걸까요,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기 위해 살아남은 걸까요?

 

 

https://youtu.be/T-Rd8LTlUpc?si=c8qkwpSU9G8l-Pc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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