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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9 | 긍휼의 향기 | 카리스 교회 주일 예배

주보와 설교

by unclechang 2023. 11. 18.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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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카리스 교회 이창우 목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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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19일 설교 및 주보

설교 제목: 긍휼의 향기

본문말씀: 레위기 1장 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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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본문

긍휼의 향기

 

본문말씀: 레위기 1:1-9

 

세금 중에는 ‘오줌세’, ‘수염세’, ‘공기세’, ‘창문세’ 등 별별 황당한 세금이 적지 않습니다. 오줌세는 로마황제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us)’가 부과한 세금입니다. 로마 공중화장실의 오줌이 양털의 기름기 제거에 이용되자, 업자들에게 오줌세를 징수했습니다. 아들인 티투스가 “사람들이 오줌에다 세금을 붙여 비아냥거린다”고 전하자,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첫 번째 지불에서 나온 돈 조각을 아들의 코에 대고 그 냄새가 불쾌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티투스가 "아니오"라고 대답하자, 그는 "그래도 소변에서 나는 냄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로 인해 오늘날 이탈리아에서는 황제의 이름을 딴 ‘베스파시아노(vespasiano)’가 공중화장실을 뜻하는 말이 됐습니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아들에게 교육시키고자 했던 이유로 말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황제는 아들에게 돈 냄새를 맡지 말라고 말했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당연히 돈 냄새를 맡으라고 가르칩니다. 기독교는 돈은 본질적으로 역겨운 냄새가 난다고 가르칩니다. 한 마디로 말해, 오줌의 지린내보다 더 역겨운 냄새가 돈에서 납니다. 오늘은 그런 역겨운 냄새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해 봅시다. 

이 역겨운 냄새는 돈을 숭배하는 사람들에 의해 나타납니다. 배 앞을 앞질러 가는 청어 떼가 아무리 많다 해도, 돈을 숭배하는 데에 길들여진 사람보다 많지 않습니다. 

한 가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집의 가장은 내일 주일이니까 교회를 가야 한다고 명령을 합니다.[1] 그러나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주일 아침, 교회 가야 할 시간에, 딸들은 아직 옷을 입지 않아 나타나지 않습니다. 진지하게 돈을 숭배하라고 양육했던 진지한 아빠, 그는 어떤 말을 할까요? 물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거나 사실상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어떤 훈계나 책망도 없었으니까요. 그는 아마도 말합니다.

“딸들이 준비하지 않는다면 이야, 집에 남아야지. 할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지.

 

그러나 그 딸들이 영화를 보러 가야 한다면, 그 특별한 시간에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얼마나 끔찍한지 상상해 보십시오. 다만 이 진지한 아빠가 어떤 행동을 감행할지 상상해 보십시오.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도 상상해 보십시오. 왜냐하면 이 경우 많은 양의 돈이 낭비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주일에 집에 남게 되면 헌금이 남게 됩니다. 지금 딸들은 엄격하고, 진지하고 아빠다운 책망을 듣게 될 것입니다. 지금 준비하지 못했다는 것은 큰 수치요, 범죄입니다. 

따라서 자녀들을 진지하게 양육했던 진지한 아빠는 다음을 위해 체벌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딸들의 입장에서 단정치 않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 경우, 죄책감은 주일날 정도의 크기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지함은 돈을 상실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보십시오. 이것이 아버지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이것이 아버지다운 위엄을 갖게 된 이유입니다. 이것이 책임감 있게 아버지다운 위엄을 활용한 예입니다. 이것을 양육이라 부릅니다! 그래, 양육일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길들여진 것은 인간이 아니라 대신에 멍청이와 괴물들이었다는 것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이때, 돈에서 역겨운 냄새가 납니다. 

따라서 언제나 그렇듯이, 역겨운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서 기독교는 더 강렬한 향기를 가져옵니다. 긍휼을 가져오십시오. 그때 돈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긍휼 없이 돈은 그 냄새가 역겹습니다. 보십시오. 거지 역시 이 역겨움을 말할 수 있습니다. 저 황제와 저 자본가만큼이나 그의 말이 치명적인 것은 당연합니다. 긍휼은 강한 향기입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히브리서 13:15-16,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 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에베소서 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빌립보서 4: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레위기 1:9,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오늘은 추수감사주일 입니다. 기도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말이, 입술의 제물(offering)이요, 하나님께 기쁨이 된다면, 긍휼은 실제로 마음의 제물이요, 성서가 말한 대로, 하나님의 코에 달콤한 향기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생각할 때, 그분께서는 돈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조차 없다는 것을 절대 잊지 마십시오.

  • 당신이 크리스천이라면, 무슨 일을 선택하겠습니까? 자선을 실천하라고 부자에게 말하겠습니까, 아니면 긍휼을 실천하라고 가난한 자에게 말하겠습니까? 

 

, 긍휼을 실천하라고 가난한 자에게 말할 때,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하게 화해시키는 것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 자신을 위하여 이것이 얼마나 필요한지 당신은 스스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시도만이라도 해보십시오. 그러면 즉각적으로 그 개념이 뒤집히는 것을 스스로 보게 될 것입니다. 결국 가난한 자는 아무것도 줄 것이 없으므로, 그들에게 긍휼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고, 따라서 가난한 자에 대해 부자가 긍휼해야 할 것처럼 생각했던 그 생각이 뒤집힐 것입니다.

이렇듯 가난한 자들은 궁핍한 가운데 있습니다. 결국 그들은 긍휼을 실천할 수 있는 그의 능력에 대한 세상의 개념 때문에 버림을 당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부자가 긍휼을 실천할 만큼 친절할 때, 기껏해야 굽실대고 감사해야 만하는 존재로, 긍휼의 불쌍한 대상으로 선택받고 포기됩니다. 긍휼의 하나님이여, 이것이 무슨 긍휼입니까!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구약 시대였다면, 번제를 드렸을 것입니다. 번제란 제물을 불에 태워 그 향기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 번제단 위에서 희생이 되는 짐승은 그 가죽을 제외한 모든 것을 거룩한 불에 완전히 태워 그 향기(연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인 것입니다.( 1:2-9) 한편, 번제는 철저한 자기 희생과 헌신을 상징하는 만큼 번제를 드리기에 앞서 무엇보다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번제는 특징이 있습니다. 먼저, 번제는 희생제물을 완전히 태우기 때문에, 제사 후에 그것을 레위인이나 제사장이 먹을 수 없습니다. 완전한 제사이지요. 또한, ‘하나님 앞에서서 드려지는 제사입니다. , 예배자는 언제나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합니다. 이것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실존주의자 샤르트르의 시선과 다른 이유입니다. 그때, 그는 그 동물의 머리에 손을 얹어 안수합니다.

  • 왜 동물에게 안수를 하는 것일까요?

 

왜냐하면 이것은 제물이 예배자를 대신하여 희생당하는 것을 상징하며, 죄가 희생 동물에게 전이됨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희생 동물은 사실상 예배자의 소유입니다. 따라서 예배자는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로서 그것을 바치는 것입니다. 모든 번제는 드리는 자가 직접 죽이고, 각을 떠야 하지만, 새만 제사장이 직접 죽였습니다. 아마도 새는 작고 피의 양이 적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 성경에서 이렇게 번제를 드린 대표적인 예는 누구일까요?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렸을 때, 번제로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얼마나 끔찍한 행위입니까? 사랑하는 자식을 상대로 각을 떠야 하다니요! 각을 뜨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나온 대로, 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내장을 다 끌어내고, 사지를 전부 절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시대에는 가난한 사람은 드릴 것이 없어, 아마 비둘기를 잡아 번제로 드렸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과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녀는 드릴 것이 동전 두 닢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녀는 동전 두 닢을 바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친 것입니다. 이 제물이 예수님의 마음을 닮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스스로 제물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 지난 시간에 가난한 자의 긍휼이 부자의 긍휼보다 더 완전한 긍휼이라 말한 적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것은 제물과 관련하여 설명이 될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가 죽은 이유는 그가 긍휼이 없어서 죽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상징적으로 그의 창자가 터져서 죽었는데, 이때, 이 단어는 스플랑크나로 창자라는 뜻으로도 쓰이지만 예수님의 마음을 뜻하는 용어로도 쓰인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번제에서 중요한 것은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는 행위를 합니다. 왜 저는 이 구약의 말씀이 긍휼과 연결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가난한 자가 긍휼할 때, 그가 아무것도 줄 수 없을 때, 나사로가 부자를 향해 긍휼할 때, 그는 결국 자기를 희생제물로 드린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그래서 그는 자신을 제물로 드린 예수님과 비슷한 상황이 되는 것이지요. 그는 어떤 제물을 드린 것보다 값진 것이고, 그래서 이것이 어떤 향기보다 하나님께 향기로은 마음의 향기입니다. 이것이 어떤 긍휼보다 완전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긍휼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1][1] 이 부분은 누가복음 2:1을 암시한다.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https://youtu.be/xJnUPf7OMnk?si=DsQYnM7rqzLTffJ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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