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 거리

다윗과 온유

unclechang 2025. 5. 3. 07:49

 

시므이를 향한 다윗의 용서가 온유한 자의 용서로 보기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신약의 관점,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삶을 통해 본 용서와 온유함의 빛에서 보면, 다윗의 태도는 일종의 정치적 계산이 섞인 관용에 가깝지, 순전한 온유함이나 무조건적인 용서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1. 시므이를 용서한 다윗의 모습: 즉각적 용서인가, 전략적 유보인가?

사무엘하 16장

 

  • 시므이가 도망가는 다윗을 저주하고 돌을 던짐. 아비새는 그를 죽이자고 함.
  • 다윗은 말함: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하신 것이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고… 복을 내게 주시리라.” (16:10–12)

 

표면상으로는 용서처럼 보이지만, 그 말은 철저히 하나님께 판단을 맡기는 위탁이지, 적극적인 사랑이나 수용의 태도는 아닙니다.

 


 

2. 귀환 후 시므이를 대하는 모습 (사무엘하 19:18–23)

 

  • 시므이가 죄를 뉘우치고 살려달라고 빔.
  • 다윗은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고 맹세함.

 

하지만 이 역시 정치적으로 미묘한 시점입니다. 왕이 된 직후 반대파를 대거 숙청하면 반란 가능성을 키울 수 있기에, 다윗은 표면상 화해를 택합니다. 그러나 이후에 그의 내면의 판단은 전혀 바뀌지 않았음이 드러납니다.

 


 

 3. 유언에서 드러난 진심 (열왕기상 2장 8–9절)

 

  • 다윗은 솔로몬에게 말합니다: “그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라. 지혜롭게 행하여 그의 백발이 피와 함께 스올에 내려가게 하라.”

 

이는 온유함의 유보가 아니라 복수의 유예에 불과합니다.

 


 

✝ 신약적 용서와 온유함은 다르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매우 분명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태복음 5:44)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 (마 5:5)

 

예수는 자신을 모욕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에게조차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눅 23:34). 이 용서는 정치적 유보나 조건적 사면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존재적 용서입니다.

 


 

결론: 다윗의 용서는 “왕의 정치적 관용”일 뿐, “하늘의 온유”는 아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 중 하나지만, 그의 용서는 실존적으로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에서 비롯된 용서라기보다는, 통치자이자 전략가로서의 처신입니다. 그 안에는 여전히 기억된 원한과 정의의 복수에 대한 집념이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