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NB27:5, Pap. X5 A 5, 1852년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Ved Gud formaae vi alle Ting)
이 말이 오해될 수 있다 해도, 적어도 한 가지에 대해서만큼은 오해일 수 없다.
즉,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에서 요구하시는 바에 대해 이 말을 적용하는 것―거기에 있어서는 단호히 참된 말이다.
우리가 그것을 할 수 없다고 느낄지라도, 하나님 안에서는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것이 얼마나 잘못되고 전도되었는지, 이제는 이런 말을 하면 불경(不敬)이라고까지 여겨질 지경이다. 즉,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신뢰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 안에서 명령하신 바를 행하려 한다면, 그것이 도리어 지나친 교만(Formastelse)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 사태는 여기까지 와버렸다.
이제는 단지 기독교 전체를 폐기한 것만이 아니라, 기독교 자체를 - 아니, 기독교를 오히려 ‘교만’으로 간주하며 폐기해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물론 그 말 자체가, “기독교가 폐기되었다”고 말하는 것조차 완전히 안전하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지만 말이다.
1. 빌립보서 4장 13절과의 연결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이 구절은 바울이 자기 능력이나 처지를 초월해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다는 실존적 신뢰를 표현한 말입니다. 키르케고르는 이 구절을 통해 다음과 같은 역설을 강조합니다:
-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지만,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자기 욕망을 이루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에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따라서 키르케고르는 이 구절을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나는 못 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은혜를 구하는 것”의 모순을 폭로하는 데 사용한 것이다. 그는 말한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신다면, 그것은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할 수 있음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하다.”
2. 마가복음 9장 23절과의 연결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이 구절은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와 예수 사이의 대화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여기서 믿음은 전능의 통로가 아니라, 절대자에 대한 전적인 의탁이며, 존재론적 열림입니다. 키르케고르는 이 구절의 맥락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논리를 전개합니다:
-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내 삶 안에서 열어주는 관계성이다. 그러나 이 믿음을 전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을 실현하려는 자”를 도리어 오만하다고 여기는 시대정신이 나타난다. 즉, 믿음은 실현 불가능한 명령을 감히 ‘할 수 있다’고 받아들이는 용기이자, 하나님 안에서의 순종이다.
3. 키르케고르의 변증법적 적용
이 일기에서 키르케고르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신다”는 말을 통해 다음과 같은 실존적 역설을 드러낸다:
전통적 오해 | 키르케고르의 변증 |
“할 수 없다 → 은혜가 더 필요하다” | → 이것은 거짓된 신앙, 기독교가 아니다 |
“하나님이 선하게 다가오시니, 괴로워선 안 된다” | → 조용히 따르는 자가 참된 신자이며, 거부하는 자에게는 고통조차 선의 표현 |
“내가 세상에서 잘 지내고 있으니, 하나님께 복 받은 것” | → 가장 무서운 형벌은 하나님께 무시당하는 것 |
이 모든 구조는 결국 빌 4:13과 막 9:23을 토대로 다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분이 요구하시는 것을 나는 그분 안에서 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그걸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 요약 정리
요소 | 빌립보서 4:13 | 마가복음 9:23 | 키르케고르의 적용 |
주제 | 능력의 근원은 그리스도 |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함 | 하나님의 명령을 ‘할 수 없음’이라고 말하는 태도는 신앙이 아님 |
대상 | 그리스도를 믿는 자 | 믿는 자 | 자기 기만을 벗고, 하나님 앞에 책임지는 실존 |
키포인트 |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은 자기 욕망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힘 | 믿음은 전능이 아니라, 신적 요구 앞에서 순종할 수 있는 실존의 능력 | 진짜 믿음은 포기하지 않는 순종의 결단이며,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바를 두려움과 떨림 속에서 행하려는 용기다. |